수지타잔

퇴사 면담 후기

zyzan 2022. 3. 12. 14:14

월요일에 과장과 팀장에게 퇴사 의향을 밝혔다. 그나마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동료가 퇴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좀 걱정이 되긴 했다. 좀이 아니라 많이 신경 쓰여서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는 잠을 거의 못 잤고,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이따 뭐라고 말할지 메모장에 정리를 해봤다. 어떤 점이 힘들었고, 이러이러한 점이 잘 안 맞아서 고민이 되던 차에 좋은 제안을 받게 되어 옮기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. 

무척 예민한 상태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은 잘 안 들어가서 거의 다 남겼다. 오후 세 시쯤 과장에게 사내 메신저로 "시간 괜찮으실 때 면담 요청드립니다^^^^"라고 보냈다. 눈치가 빠른 과장이 "설마..!"라고 답장을 보냈다. 회사 라운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과장에게 그간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간략히 말했다. 회사의 문제였다기보다는 내 역량의 문제였으며, 아는 분에게 좋은 자리를 제안받아 옮기기로 했다는 것이 요지였다. 물론 다 구라다.

과장이 팀장에게 메신저로 전달했고, 얼마 후 팀장에게 미팅콜이 왔다. 팀장에게도 같은 구라를 쳤다. 팀장은 감정적으로 호소했다. 그는 이렇게 말했다. 저는 지잔님과 일하는 것에 대해서, 물론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만, 그보다는 저는 제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. 운 좋게 지잔님 같이 좋은 분을 만나서, 이렇게 같이 일하게 되고, 그래서 앞으로도 지잔님과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이거든요. '물론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만'이라는 부분에 꽂혀서 뭐지, 일을 잘 못한다는 소린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. 하루만 더 생각해보고 다시 얘기하자해서 그러겠다 하고 다음날 다시 면담을 했다. 팀장은 500만 원 연봉 인상을 제안했다. 받아들였어야 했나? 사실 이 회사와 업무에 정이 다 떨어져서 그런지 그 소릴 듣자마자 이 새끼들.. 더 줄 수 있는데 안 줬구나.. 하는 생각이 들었다. 옮기는 곳에서 그것보다 더 주기로 했다고 개구라를 쳤다. 그는 아, 그렇구나. 어딘지 돈이 되게 많은 회산가봐요? 라고 약간 비아냥거렸다.

그동안 무조건 퇴사 한 달 전에 말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, 커뮤니티에 찾아보니 협의하면 2주도 쌉가능이며 나가는 마당에 절대 회사 사정 봐주지 말라는 게시물에 동의하는 댓글이 많았다. 가까웠던 동료 역시 여유 기간 얼마 없이 바로 나간 걸 보고 나도 따라했다. 팀장이 '업계에 안 좋은 소문을 낼 수도 있다'는 식으로 약간 협박조의 말을 하긴 했으나 날짜는 원하는 대로 밀어붙였다. 심장이 벌렁거렸고, 계속 좀 눈치가 보이긴 한다.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지난 번에 면접을 봤던 곳에 붙을 줄 알고 먼저 퇴사를 지른 건데 거길 떨어졌다^^^^ 젠장. 우야노. 우야면 좋노. 돈 걱정이 많이 된다. 우야노. 우야면 좋노. 근데 또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여긴 못 다니겠다. 그리고 또 생각해보면 아무데도 못 다니겠다^^^^ 어째 이렇게 생겨먹은 건지. 니 앞가림은 해야할 거 아니야. 어떡할 거야. 한편으로는 요즘 보는 유튜버들의 논지에 좀 설득된 건지 야, 니가 진짜 이것저것 노력하면 니 한 몸 건사할 돈 못 벌겠냐?! 하는 깡이 뻐렁친다. 뭐든 해야지.